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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스위스로 떠나는 하이킹 여행

by 자연과 함께하는 모든정보 오만가지 2025. 3. 3.

리기 파노라마 트레일 기차

비행기가 취리히 공항에 착륙하자 창문 너머로 펼쳐진 풍경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높은 봉우리들, 그 아래로 초록빛으로 물든 초원과 호수가 조화롭게 펼쳐져 있었다. 5월의 스위스, 바로 이 시기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루체른: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동화 속 도시

취리히에서 기차를 타고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루체른(Luzern)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눈앞에 펼쳐진 루체른 호수(Lake Lucerne)의 맑고 푸른 물결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백조들, 저 멀리 눈 덮인 산들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루체른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리기산(Rigi Kulm)이었다. ‘산들의 여왕(Queen of the Mountains)’이라는 별명이 붙은 이곳은 하이킹 초보자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코스가 많아 첫 번째 트레킹 장소로 안성맞춤이었다.

🚆 가는 길: 루체른에서 유람선을 타고 비츠나우(Vitznau)로 이동한 후, 산악 열차를 타고 리기산 정상까지 올라간다.

정상에 도착하니 360도 파노라마 전망이 펼쳐졌다. 아래로는 루체른 호수가 반짝이고, 멀리 쥐라 산맥과 알프스 봉우리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나는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 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산할 때는 열차 대신 리기 파노라마 트레일(Rigi Panorama Trail)을 따라 걷기로 했다. 부드러운 흙길을 따라 걷다 보니, 여기저기 들꽃이 만발해 있었다. 마을에서는 스위스 전통 농가에서 갓 만든 치즈를 파는 곳도 있었다. 향이 진한 치즈 한 조각과 함께 따뜻한 햇살을 즐기는 이 순간,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인터라켄: 두 개의 호수 사이에서 만나는 알프스

다음 목적지는 인터라켄(Interlaken). 이름 그대로 툰호수(Thunersee)와 브리엔츠호수(Brienzersee) 사이에 자리 잡은 도시다. 이곳은 스위스 하이킹의 중심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를 가든 거대한 아이거(Eiger), 묀히(Mönch), 융프라우(Jungfrau) 봉우리가 여행자를 압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 하르더쿨룸 전망대(Harder Kulm)

전망대에 선 관광객들

하이킹을 시작하기 전에 인터라켄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하르더쿨룸 전망대로 향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발 아래로 푸른 호수와 알프스 봉우리가 어우러진 풍경이 펼쳐진다.

📍 라우터브루넨: 폭포가 흐르는 계곡 마을

하이킹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폭포의 계곡’이라는 별명을 가진 곳으로, 마을 주변으로 72개의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나는 라우터브루넨에서 뮈렌(Mürren)까지 이어지는 하이킹 코스를 선택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오른쪽에서는 거대한 슈타우박 폭포(Staubach Falls)가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처럼 흘러내리고, 왼쪽으로는 푸른 초원 위에 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었다.

체르마트: 마터호른과 함께하는 마지막 하이킹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체르마트(Zermatt)와 마터호른(Matterhorn)이었다. 이곳은 자동차가 다니지 않는 청정 지역으로, 공기도 맑고 조용한 분위기가 인상적이었다.

📍 고르너그라트 하이킹(Gornergrat Trail)

🚆 가는 길: 체르마트에서 고르너그라트 산악열차를 타고 정상까지 이동한 후, 걸어서 내려오는 코스

고르너그라트 전망대에 도착하자, 눈앞에 마터호른(4,478m)이 우뚝 솟아 있었다. 정말이지, 스위스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풍경이 있을까 싶었다.

여행을 마치며…

5월의 스위스는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하이킹을 할 때마다 다른 풍경이 펼쳐지고, 들리는 건 오직 바람 소리와 새소리뿐이었다. 도심에서 바쁘게 살아가며 잊고 있었던 자연의 소리를 이곳에서 다시 찾은 기분이었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깨달음이 있다면, 좋은 풍경은 걷는 자의 몫이라는 것. 걸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천천히 걸을수록 더욱 깊이 자연을 느낄 수 있었다.

스위스를 떠나는 기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을까?"

그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스위스는 다시 올 가치가 충분한 곳이라는 것.